전라도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는 익산 미륵사지였다.
익산 미륵사지는 "사실상" 백제의 4번째 도읍이라고 하지만 역사 기록상으로는 확실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도읍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정설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즉, 역사 기록엔 별 것 없는데 막상 고고학적으로는 역사 기록에 잘 남아있는 다른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융성한 문화인 곳 말이다.
대표적으로 전라남도 영산강 유역 문화가 그렇고, 낙동강 유역 가야 문화가 그렇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대사는 대부분 삼국사기, 혹은 중국의 삼국지에 있는 기록들이 사실상 전부인데, 삼국사기의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이야기가 중심이고, 삼국지는 이들이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전에 있던 소국들을 다룬다. 이 소국의 시대는 역사학적으로는 원삼국시대, 고고학적으로는 초기철기시대라고 부른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놓치기 쉬운 사실들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삼국사기는 고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삼국을 중심으로 기록했을뿐 최종적으로 삼국이 정립되기 전 삼국보다 더 융성했던 고대 문화가 한반도 곳곳에 있다. 삼국이 끝까지 살아남아 다른 국가들보다 우위에 섰던 시기는 대략 6세기, 즉 서기 500년대이고 가장 먼저 망했던 백제가 660년, 즉 서기 7세기 중반에 망했으니 정작 삼국이 정립하여 치열하게 싸웠던 시기는 100~200년 정도이다.
그럼 그 전에는 어땠을까.
고구려들 백제든 신라든 각각의 본거지와 그 주변에서 다양한 국가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발전했고 점차 확장을 하다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그 삼국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익산도 역사 기록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 문화 중 하나이고, 그 문화의 양상은 고고학, 즉 물질문화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익산 미륵사지에 도착했을 땐 주차장이 한창 공사중이어서 주차를 하고 조금 걸어야 했다. 참고로 익산 미륵사지는 국립익산박물관이랑 같이 붙어있고 주차장도 같이 쓴다.
국립익산박물관의 외관은 국립춘천박물관 이후로 인상 깊었다.
마치 역사 기록에는 없는 새로운 문화를 탐방하라고 지하로 안내하는 기분이랄까.
내가 고고학 공부를 7년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익산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생소한 것이 많았다. 분명히 내가 공부한 시점에선 발굴과 어느 정도의 연구가 완료된 시점이었는데, 아무래도 익산 쪽에 관심을 덜 뒀었나 보다.
인상 깊었던 전시품들 사진을 조금 나열해 본다.
박물관을 나와서 곧장 미륵사지로 향했다.
미륵사지에는 썩지 않는 석탑 2기가 덩그러니 남아 있고, 건물터는 주춧돌 정도만 남아있었다. 뭐 이젠 여기서 고고학적 의미가 무엇이고 연구 성과가 어떻고 석탑을 복원한 스토리가 무엇이고 그런 것은 크게 관심이 없다.
예전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터에서 그냥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느낌을 받고 남아 있는 석탑의 미적 모습과 주면의 경치를 즐길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면 아주 잘해놓은 것 같다. 평일이고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사진을 찍고 한다면 그때 그 사람들도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이고 현대의 문화재 관리와 활용 측면에서도 기본 이상은 한 것이 아닐까.
그다음 일정은 열심히 고속도로를 타고 진도에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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